<이방인>

이방인(2022)은 경춘선의 매 역 마다 정거하며 촬영한 사진과 글을 나열한다. 경춘선은 작가의 원치 않은 지역 이동 중 가장 많이 이용한 교통 수단으로, 강제적으로 화자가 반복하여 이동한 경로이기도 하다. 작업은 작가의 과거 주거 공간이었던 지역으로부터 출발하여 특정한 과거의 시점으로 향한다. 각 장소는 정해진 철로의 거점으로서 특정성이 희석된 공간이다.

이에 작가는 직접 발을 디디며, 개인의 일생과 밀접한 사건을 정해진 경로에 맞추어 기록한다. 일정하게 기록하는 과정은 수행적 태도를 가지며, 끊임없이 순환하는 경춘선의 각 역을 개인의 시선으로 멈추게 된다. 지속적으로 많은 사람과 시간에 의해 덮인 현재의 시간선 위에 과거를 겹치게 되며 화자의 불안정함은 부유하고 고립된다. 이러한 괴리는 작가가 유랑하며 가지고 있는 ‘이방인’으로서의 태도를 강조하고, ‘무딘 평화의 감각’을 드러내게 된다.

 Where is(2022)는 이방인과 연계되는 작업으로 늘 거주지에 정착하지 못하고 유랑하던 작가의 원치 않은 이동을 시각화한 작업이다. 주거 공간의 거주는 기능이 아니라 허락의 성격을 가진다. 머무르던 주거 공간의 거주가 허락되지 않는 순간은 큰 공허함을 불러온다.작업은 ‘영원한 집’은 없다는 공허감을 메꾸기 위해 시작한다. 이는 더 이상 허락되지 않아도 존재를 증명하는 흔적 남기기다.


<Where is>, 천 위에 유채, 160 x 313cm, 2023  


<정차>, 디지털 인화, 2022
<정차>, 디지털 인화, 2022
<정차>, 디지털 인화, 2022
<정차>, 디지털 인화, 2022
<정차>, 디지털 인화, 2022
<정차>, 디지털 인화, 2022
<정차>, 디지털 인화, 2022
<정차>, 디지털 인화, 2022
<정차>, 디지털 인화, 2022
<정차>, 디지털 인화, 2022
<정차>, 디지털 인화, 2022
<정차>, 디지털 인화, 2022
<정차>, 디지털 인화, 2022
<정차>, 디지털 인화, 2022
<정차>, 디지털 인화, 2022

<이방인>, 사철 제책, 11.5 x 17cm, 2023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지원,
이방인 작업의 텍스트와 사진을 엮어 만든 책
<이방인>, 사철 제책, 11.5 x 17cm, 2023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지원,
이방인 작업의 텍스트와 사진을 엮어 만든 책
<이방인>, 사철 제책, 11.5 x 17cm, 2023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지원,
이방인 작업의 텍스트와 사진을 엮어 만든 책


춘천

저 건너 보이는 폐공장에서
누군가 목을 매달았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지루한 일상에서 끔찍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생겼다는 듯이,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떠들었다.
나는 그것을 흘려듣고 공터를 한참 지나, 비닐하우스들을 지나,
공장을 지나 집으로 가는 열차를 기다렸다.
녹이 슬어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공장을 보아도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보단 열차 안에서 바라본 풍경들이,
이 모든 게 담겨있는 잔상에서 막연한 슬픔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을 뿐이다.
쾌청한 하늘은 날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남춘천

싸구려 모텔 주차장 뒤편에 숨어있던 나는
용기를 내서 사거리를 내다봤다.
급정거하기도 전에 봉고차에서 뛰어내린 아버지,
개처럼 맞는 남자,
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사복경찰들이 내 양팔을 움켜쥐었다.
도망치기엔 역의 불빛과 모텔의 네온사인이 두 눈을 찔렀다.
내 얼굴을 확인한 경찰들의 한마디,
“생각보다 착하게 생겼네.”


김유정

끔찍한 시간 속에서 어떻게든 평화를 만들어야만 했다.
상대적인 평화는 힘이 없다.

열두 시가 되고 열차 운행이 종료되어도
나는 창문 넘어 꺼지지 않는 역전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꺾인 차도를 바라보며 저 끝으로 계속 걸어간다면
무엇이 나올까 상상했었다.
내가 왕이 된다면 내 집부터 불태워야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집이 없는 거 같았다.


강촌

여름에는 풀냄새 가득한 곳,
매미 소리,
시끄러운 디스코팡팡의 소음…
겨울에는 비닐하우스 안 쓰레기를 태우는 노인들과
무료한 삶을 달래러 온 중년의 연인들,
그리고 언 강 위에 쌓인 눈이 제자리로 흘러가고 있었다.


백양리

열차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이상적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갈대를 헤치자 강물 비린내가 올라오고 있었다.
갈대밭에는 누군가의 검정 운동화가,
녹슨 가스버너가,
플라스틱 조각들이,
반쯤 불탄 누군가의 가족사진이 마른 풀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굴봉산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도깨비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방 천지에 귀신이 바글거리니 이런 곳에 오지 말거라.
그 사람은 나에게 신신당부했지만
나는 그와 함께라면 어떻게 되든 좋다고 생각했다.
넓은 어깨에 머리를 기대면
귀신이 가득한 구멍을 바라보고 있어도 만족스러움을 느꼈다.


가평

러시아로 떠난다는 아버지
문구점에서 4,000원짜리 수첩을 내 손에 쥐여 주시고
떠나는 아빠의 뒷모습은 너무 추워 보였다.
러시아는 어떤 나라일까?
수첩의 반짝이를 쓰다듬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나는
그 이후 오랫동안 아버지를 보지 못하였다.

몇 년 후에서야 나는 그곳이 러시아가 아니라는 것을 오빠에게 전해 들었다.


상천

무거운 슬픔은 덤덤하다.
그리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죽음을 준비하게 해준다.
차곡차곡 준비하다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이번에도 살아 돌아온 날 볼 수 있다.

나는 언제나 아무렇지도 않아야 했고
또 언제나 바보 같아야 했으며 우스꽝스러운 사람이어야 했다.
정 반대 방향의 전철을 타고 상천역을 지나던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녹음이 나를 내리쬘 때,
고해성사를 마치고 텅 빈 성당 한 가운데에서
스테인드글라스 빛을 보며 무력감을 느끼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청평

우리 아빠는 팥을 싫어하신다.
그건 아빠가 도깨비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흙길을 지나 나무들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작은 사찰이 나온다.
양옆의 문에 새겨진 사천왕 그림을 보며 나는 내적 친밀감을 느꼈다.
모두가 무섭다고 말하는 그 눈매를 보며 아빠의 눈을 떠올렸다.
그렇기에 인자한 웃음을 띈 부처님보다 도깨비라든지 사천왕이라든지
장군신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좋아한다.

낡고 꺾인 아빠의 구두를 보며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흙길을 계속해서 올라가는 아빠의 뒷모습은 도깨비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가운데 아빠는 아무 말 없이 산 위로 걸어가고 계셨다.
할아버지의 구부러진 안경을 주머니에 넣은 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소년이었다.
“이런 것 가지고 있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데, 이걸 왜 품고 있었는지..”
그렇게 말했지만, 다시 주머니에 욱여넣은 채 흙길을 계속해서 올라가셨다.


대성리

차창 밖으로 뻗어져 나온 산줄기를 보며
잠이 들지 않을 걸 알아도 눈을 감았다.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산은 아무 말도 몸짓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존재는 침묵을 일관하는 것이 진리인데,
그 이유는 결국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우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마석

그 누구도 나를 위협하지도, 무서워 보이는 사람들도 없었지만
내가 천애고독 이라는 것을 실감하며
간판 불빛이 점점 번져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뒤늦게 거북이처럼 나타나는 엄마를 보며
나는 엄마가 나에게 끊임없는 고통을 주셔도
나를 떠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내호평

비가 오던 날 아파트 단지 화단에서 나던
비린내가 기억난다.
나는 그날 저녁 자살 시도를 하고
응급실에 끌려가던 길이었는데,
더 이상 나의 두 눈으로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아서
눈을 질끈 감고 실려 갔었다.
물에 젖어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빗물 냄새는 코를 찔렀고
그제야 난 비가 오고 있음을 알았다.

금곡

밑바닥의 유대
실오라기 한 올 보태지 않은 나의 알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도
알리고 싶지도 않은 가장 수치스러운 밑바닥을 보여줌으로써 생기는 유대감.
어째서 나는 그 유대감에 대해 어떤 의심도 하지 않았을까.

꿈에 하얀 기둥이 나온다는 엄마
하얀 기둥이 받쳐주고 있던 그 건물은 이제 계단만 남긴 채 철거되었다.
그곳에서 살면서 당시 나는 강 건너에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강물이 부대끼던 그 건물에서 해 질 무렵 강 건너의 건물들과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사릉

한때 반복되는 꿈을 몇 주 동안이나 꾸었다.
작은 집에서, 작은 도시에서, 작은 숲을 지나
점점 내가 위로 떠 올라 멀어지는 꿈이었다.
밤이라서 조용해진 세상 속에서 나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정체된 밤의 풍경 속에서 멀어지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무력감 속 피어난 희망들을 억지로 곱씹었다.
꿈속의 같은 장소, 하지만 그런 장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별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른 풀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를 데리러 온 아빠는 별안간 내가 통곡하자
어쩔 줄 몰라 하시며 역정을 내셨다.
아무것도 말할 수 없던 난 그저 소리를 지르고
눈물을 흘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샤워를 했다.
살갗이 벗겨지도록 씻어도 약을 바를 수 없었다.
역 안의 장애인 화장실 앞을 지나갈 수 없었다.
누군가의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친구들이 찾아와도 아무것도 말할 수가 없었다.
거울로 내 몸을 볼 수가 없었다.
그날, 역 근처 마른 풀들과 나무들만이
나를 지켜봐 주고 있었다.
갈매

영원한 만남이 없듯이 영원한 이별도 없다.
나는 순간의 영원함을 믿는다.
순간의 진실됨을 기억하고 순간의 구슬들을
한 줄 한 줄 잘 꿰어가고 싶다.
내가 다시 하나의 바다로 돌아간다 해도
순간의 구슬들은 모래알이 되어 그 자리에 영원할 것이다.

신내

많은 사람이 나의 마음속에 있다가 떠나갔다.
누구보다 큰 방을 빌려줬는데 사람들은 그저
앞으로 빠르게 가는 것이
더 중요했나 보다.
물론 순간의 진심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순간이 은하수처럼 이어질 때 인연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별에서 끝난다면,
언젠가 빛을 잃고 그 별은 시들어 사라진다.
나의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박혀있고
또 수많은 별이 생을 다해서 죽어버렸다.
별은 이미 옛날에 찍힌 사진 같은 존재,
추억의 구슬 같은 존재이다.
그런 별이 생겨나고 다시 시들어가는 것,
죽는 것은 하나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넓은 우주에서 수많은 별들이 생겨나고 이동하고 죽어간다.
그건 하나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내가 너와 멀어지는 것도,
네가 너의 길을 가면서 나를 잊는 것도
또 내가 떠나는 것도 하나도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이다.

망우

집 앞에 있는 꽉 찬 쓰레기 봉투들
행거에 걸린 버리지 못하는 낡은 옷들,
서랍 속 가득 찬 편지들,
빌딩 유리에 비친 나의 모습,
아빠가 사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칠이 벗겨진 침대,
퇴근 거리를 채우는 압구정 대형 학원버스들,
기침 소리,
절뚝거리는 모습,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는 잘 차려입은 사람들,
벽에서 떨어지려 하는 나의 그림,
기둥
이것들은 나를 참을 수 없게 슬픈 기분으로 만든다.
참을 수 없는 슬픔이 한계에 이르면
너무나도 공허하고 고독한 기분이 된다.


상봉

경계선에 서서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나는 언제나 도망치고 싶었고, 떠나버리고 싶었지만
동시에 늘 그 자리에 정착하고 싶었다.
행복한 순간들이 속절없이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전철 안에서 몇십 번의, 몇 백 번의 왕복을 하며
내려야 할 곳이 정해져 있었지만
난 단 한 번도 창밖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차창 밖으로는 말 없는 공동묘지들이
노을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해가 지고 나서야 도착한 종점에서
갈 곳 하나 없는 막막함이라도
나는 곧 아늑함을 느꼈고,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다시 출발하는 전철을 배웅해줬다.


<집으로 가는>
나무판자에 나무블럭, 유리구슬, 혼합재료, 8.5 x 45 x 25cm, 2023